칼럼

부정행위 위자료 사건의 냉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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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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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2년 차 주부였다. 남편 옷에서 나온 영수증 한 장이 시작이었다고 했다. 미행을 한 것도, 흥신소를 쓴 것도 아니었다. 세탁을 하다 우연히 발견한 종이 한 장에는 아내에게 선물한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 선물되었을 여성 속옷 구입내역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몇 달간 잠도 들지 못한 채 퍼즐을 맞추듯 조각들을 모았다. 출장을 간다는 남편을 따라가기도, 상갓집에 간다던 날 결제 내역이 남긴 카드 영수증을 하나하나 대조해 나갔다. 결국 그렇게 찾게 된 부정행위의 시초는 1년이 넘은 시점부터 증거를 남기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간통죄가 폐지된 이후, 배우자의 부정행위에 대해 법이 마련해 둔 책임 수단은 사실상 민사상 위자료가 전부다. 형사 처벌의 길이 닫히면서, 배신의 값을 묻는 일은 온전히 손해배상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처벌해 달라고 할 수는 없고, 배상하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상담실에서 말씀을 드리면 많은 분들이 되묻는다. 정말 그게 전부인 것이냐고.

법리 자체는 이미 확립되어 있다. 부부는 서로 정조의무를 부담하고, 제3자라 하더라도 타인의 부부공동생활에 개입하여 이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은 제3자가 부부 일방과 부정행위를 하여 배우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본다.

여기서 부정행위란 간통보다 넓은 개념이다. 성적 관계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부부의 정조의무에 충실하지 않은 일체의 행위가 포함된다. 새벽마다 이어진 애정 표현의 메시지, 단둘이 다녀온 여행 같은 것들이 그래서 법정에서 다투어진다. 다만 우리 법원은 혼인관계가 이미 파탄되어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태였다면, 그 이후 제3자의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본다.

소송 과정 자체가 주는 고통도 있다. 상간녀 혹은 상간남 측은 흔히 두 가지로 방어한다.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는 부인, 그리고 당신들의 혼인은 이미 파탄 나 있었다는 항변이다. 피해자는 법정에서 자신의 결혼 생활이 얼마나 멀쩡했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이상한 자리에 서게 된다. 가장 아프게 배신당한 사람이 가장 많은 것을 입증해야 한다.

당사자에게 이런 고통이 따르는 순간 정작 변호사로서 필자가 마주하는 어려움은 법리가 아니라 아래의 냉혹함이다.

첫째는 증거의 함정이다. 배우자의 휴대전화를 몰래 열어 잠금을 풀고 메시지를 통째로 내려받는 순간, 피해자가 형사 문제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역으로 고소당하는 사례가 실제로 있다. 배신당한 사람이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참으로 잔인한 상황이다. 

둘째는 기간이다. 부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그 사실과 상대방을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소멸시효에 걸린다. 참고 견디며 가정을 지켜보려 애쓰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부모님이 아신다는 두려움으로, 몇 년을 혼자 삼키다 오시는 분들이 많다.  법적으로는 권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상담실 공기는 무거워진다.

셋째, 가장 냉혹한 진실은 위자료의 액수다. 실무에서 인정되는 위자료는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2~3천만 원 사이에서 정해진다. 언론에 보도되는 큰 금액들은 예외적인 사례에 가깝다.

혼인 기간, 부정행위의 기간과 정도, 파탄에 미친 영향이 고려되지만, 어떤 숫자를 말씀드려도 그분들의 얼굴에는 같은 표정이 떠오른다. 십수 년의 결혼 생활이, 아이들과 쌓아온 시간이, 그 정도로 계산되느냐는 표정이다.

몇 달간 이어진 재판 끝에, 혼인 12년 차 의뢰인은 판결문을 받아 들고 말했다. "돈은 됐어요. 그 사람이 잘못했다고 적어준 것, 저는 그게 필요했어요."

위자료 소송의 본질은 어쩌면 금액이 아니라 문장에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의 고통이 근거 있는 것이었다고 적어주는 한 줄. 필자가 이 사건들을 대리하면서 숫자보다 그 한 줄을 위해 다투는 이유다.

그러나 판결문은 과거를 정리해 줄 뿐, 남은 삶은 그분들이 스스로 다시 세워야 한다. 부디 그 고통 속의 이들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을 되찾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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