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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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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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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받을 수 있을까요…“

맞은편 여성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혼한 지 20여 년, 전 남편이 약속한 양육비는 처음 몇 달을 제외하면 지급되지 않았다. 친정 부모님들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전혀 없어 양육비가 끊기자 월세부터 문제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기술을 요하지 않고 구직하기 수월한 곳들을 서둘러 찾아다녔고 편의점, 식당 서빙을 주로 했단다. 월 200만 원 안팎으로 월세, 생활비를 마련하고 어린 딸아이는 맘씨 좋은 원룸 주인이 돌보다시피한 시간을 보냈었다고 한다.

몸이 부서지듯 일했지만 여자 혼자 몸으로 부양을 하기란 너무 힘겨웠다. 학원비가 없어 아이를 빈손으로 보내며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라던 날, 식탁에 편의점 도시락을 올려놓고 울며 출근하던 날, 잠든 척하는 아이의 눈물을 못 본 체하며 식당 주방 야간 시간을 채우던 날, 친구들과 놀이동산을 간다던 아이에게 돈이 없다 말 못 하고 위험해서 안된다는 이해 못 할 이유로 밤새 다투던 날을 이 악물고 버텨온 유난히 작은 분이셨다.

지난 20년을 듣던 필자는 길어지는 그이의 하소연을 차마 끊지 못했다. 어떻게 해결할까가 아닌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잠시 본업을 잊을 정도로 그 회고의 슬픔에 공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28년. 딸은 고맙게도 공공기관에 취업을 했다고 한다. 부족함 없이 키워주셔서 감사하다 적은 편지와 함께 첫 월급을 담은 봉투를 열어보다 문득, 아이에게 풍족한 것이 없었던 시간이 서러워 오열하셨다고 한다. 안도와 함께 억울하다는 생각이 밀려왔다고, 필자에게 찾아온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부터 꺼낼 수밖에 없었다. 과거 양육비란, 이혼 후 지급받지 못한 기간에 대해 소급해서 청구하는 권리를 말하는데 오랫동안 대법원은 이 권리에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당사자 간 협의나 가정법원의 심판으로 구체적인 청구권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추상적 법적 지위에 불과하므로 시효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수십 년 전 양육비도 청구할 수 있다는 의미였고, 역설적으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라는 오해를 낳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24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 판례를 변경했다(2018스724). 결론은 자녀가 미성년인 동안에는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지만, 자녀가 성년이 된 그 순간부터 10년의 시효가 흐르기 시작한다고 바뀐 것이다.

대법원은 "이혼한 부부 사이에서 어느 일방이 과거에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면서 생긴 비용의 상환을 상대방에게 청구하는 경우, 자녀의 복리를 위해 실현되어야 하는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의 성질상 그 권리의 소멸시효는 자녀가 미성년이어서 양육 의무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진행하지 않고 자녀가 성년이 되어 양육 의무가 종료된 때부터 진행한다"고 판시하였는데, 시효 진행이 없다던 기존의 법리를 깨고 이와 같이 의견을 변경한 이유에는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청구한 사람보다 유리한 결과를 받는 부조리를 해소해야 한다는 점 있었다.


사실상 영구적이던 권리로 해석하던 틀이 비로소 달라진 것이다. 의뢰인의 아이가 성년이 된 지 10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언제든' 소멸될 수 있는 카운트다운 시작 상태였다.

그녀의 노고는 딸아이의 기억 속에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밤 10시, 식당으로 떠나던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울어봐야 마음 아파하면서도 나갈 수밖에 없는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던 모녀의 사랑은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법원의 모래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당신의 권리를 행사할 시간을 정해두고 그 권리 위에 잠자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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