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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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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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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이 잦은 편이다.

의뢰인들은 업무 시간을 가리지 않고 연락하는데, 기일은 또 왜 이리 겹치는지, 그리고 상대 변호사님들은 어찌 꼭 변론기일 전 날 서면을 내는지 일하다가 책상 위 볼펜을 집어던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바쁨 속에 필자는 언제부턴가 효율을 찾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이 정도면 충분하고, 저 사건은 이 쟁점만 다루면 된다는 식의 계산. 스스로는 '경험'이라고 불렀지만 어쩌면 '요령'에 더 가까웠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필자의 법률사무소에는 이 변호사님이 있다. 연차가 위인 형님이신데 섬세하나 답답한 성격이다.

어느 여름밤, 지인들과 회식을 마치고 사무실 앞을 지나는데 형님 방에서 불이 켜져 있었다. 기억에 10시는 되었던 것 같은데, 이 시간 누구지 하며 도어록을 열고 사무실 문을 여니 셔츠도 벗어놓고 반팔 러닝셔츠를 입은 채 형님은 기록을 읽고 있었다. 한 손에는 형광펜, 다른 손에는 볼펜. 기록 여기저기 빼곡히 메모를 하고 있었다.

소액 사건이었다. 순간 미안함과 짜증이 동시에 올라왔는데 청구금액 1500만 원 소액 사건에 늦은 밤 시간을 소요하고 있는 모습이 답답해서였다.

“형님, 뭐해?” 형님은 고개를 들지 않고 답했다. “어. 좀 걸려서.”

크게 걸릴 부분 없는 사건이었다. 청구 원인도 증거도 다 명확하고 그냥 판결 받고 집행하면 끝날 사건이었다. 심지어 상대방은 변호사 선임도 안 되어 있어 패소 가능성이 없는, 아니 없을 예정이라 믿고 있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형님은 수기로 적은 상대방 답변서의 비 법률화된 문장들을 좀처럼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는 필자에게 “아 그냥 좀 걸려서 그래 먼저 들어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하는 형님의 모습에 “아니 걸리기는 뭐가 걸려, 그냥 들어가, 아기 아직 돌도 안됐어.” 하고 싶었지만 그 표정을 꺾을 자신이 없었다.

대답 없이 필자는 사무실 문을 다시 잠그고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해 보니 형님 책상에 A4 두 장짜리 서면 초안이 놓여 있었다. 별 내용도 없었다. 겨우 두 장. 그걸 쓰려고 어젯밤 이 답답한 양반은 뭐 그리 걸렸던 것일까.

그날 이후로 형님의 일하는 방식을 유심히 보게 됐다. 의뢰인이 전화를 하면 짧게 끊는 법이 없었다. 선고 결과를 전달할 때도 판결문 내용을 반드시 함께 설명하셨다. 이긴 사건이든 진 사건이든, 마지막 통화가 길었다. 진 날의 통화가 특히 그랬다.

이 사람에게 이 일은 효율이 아닌 그 무언가구나, 배우는 날이 많아졌다. 둘 다 많이 취한 어느 날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뻔한 사건을 왜 맨날 다시 보고, 다시 보고 하는 거야? 결과가 같잖아. 수백 개 중 하나잖아 그냥.” 형님은 멋쩍은 듯 답했다. “그 사람들한테는 하나 중 하나니까.”

짧은 말이었지만, 필자는 더 이상 물을 말이 없었다. 나 역시 처음 변호사 일을 시작했을 때는 사건 하나하나가 전부였고 잠을 못 자고 기록을 읽었고, 판결문 한 줄 한 줄에 일희일비했다. 그런데 사건이 쌓이며 감각이 옅어졌다. 무뎌진 나를 성숙이라 불렀고, 감정을 거두는 걸 전문가라 여겼다.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허락한 나태였는지도 모른다. 형님을 보고 있으면 그게 착각임을 안다.

경험이 많을수록 더 촘촘하게 기록을 읽을 수 있고, 더 빨리 의뢰인의 불안을 알아챌 수 있다. 연차는 요령이 아니라 성실의 밀도를 높이는 데 쓰여야 한다. 형님은 그것을 말로 가르친 적이 없다. 그냥 매일 저녁 방에 불을 켜두는 방식으로 보여줬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결정한다. 내가 어떤 변호사이고 싶은지를, 어떤 속도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를, 사건 하나의 무게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필자는 형님에게 따로 배운 적이 없다. 그러나 적지 않은 것을 배웠다. 오늘도 형님 방에는 불이 켜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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