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뒤늦은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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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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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고등학교에 특강을 나간 적이 있다. 아이들의 질문은 참 다양했고 그중 한 아이가 변호사로서 일하며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지금도 같은 생각은 바로 “일을 선택할 수 있다"라는 점이다. 하기 싫은 사건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직업적으로 상당한 이점인데, 예를 들어 수학 선생님이 국어 강의를 하지 않을 수는 없고 소아과 의사가 아이들을 치료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나 변호사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변론을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참 좋다.

그래서 필자는 국선 변호 사건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국선 변호 사건은 사실 필자의 의중과 상관없이 법원이 직권으로 재판부 소속 변호사 중 1인을 변호인으로 지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선 변호인 선정 통지서가 오는 날은 늘 기대 반 걱정 반이다. 파란 조끼를 입은 우체부 아저씨께서 친절하게 가져다주시는데, 봉투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떨려온다.

수개월 전 떨리는 마음으로 봉투를 조심스레 뜯는데 “아동학대시차” 사건이 배정되었다. 잘못 배송된 게 아닌가 지정 변호사 이름을 두어 번 더 살펴보았다. 친모가 아이를 학대하여 돌이 조금 넘은 아이가 사망한 사건의 항소심이었는데 송달된 제1심 판결문을 채 다 못 읽고 화장실에 달려가 구토를 했다. 잔혹한 학대에 사망한 아이의 고통이 채 온전히 전해지지도 않았을 텐데 판결 이유의 무게감은 아직 젊은 변호사가 끌어안기에 너무도 날카로웠다.

피고인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부터 올라왔다. 그럼에도 맡겨진 일이고 접견을 갔다. “공소사실을 인정하였던데 1심과 의견이 같습니까.”라는 질문에 아이의 엄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후 우리는 할 이야기가 없었다. 너무도 평범하게 생긴 아이 엄마의 빛없는 눈동자가 오랜 시간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렇게 다음 주, 그다음 주, 그다음 주도 계속 접견을 갔다. 사건 공소사실을 전부 인정한다는 피고인에게 변호인이 사실 특별히 확인할 사항도 없었으나 피고인의 무엇이라도 마음으로 이해를 해야만 변호인으로서 변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접견 당시 피고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저도 이 나이 즘의 아이를 키우는데, 아이가 이쁘지는 않았나요...?” 변호인의 질문에 피고인은 울음을 터트렸고 한참을 아이가 생각난다며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사무실에 돌아오는 차에서 생각했다. “엄마는 법정에서 본인의 죄에 대한 처벌을 구하고 있으나 이미 그의 삶은 형벌이다. 막 돌이 된 아이의 첫 걸음마를 보지 못하게 되었고, 이제 막 엄마라는 단어를 시작하는 아이의 따뜻한 포옹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미 세상을 떠나 멀리 가버린 아이에게 용서를 구할 방법도 없고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엄마의 고통은 결국 매일이 형벌로 남을 것이다. 그의 삶은 녹록지 않았고 그 아픔을 바보같이 아이에게 풀었던 것이다.”

같은 내용으로 최후 변론을 하며 몇 번의 눈물을 참았는지 모르겠다.

사실 검사의 공소사실을 전부 인정하는 피고인에 대한 재판에서 변호사가 할 수 있는 변론은 그리 많지 않다. 금전 관계와 관련된 소송이라면 변제하면 그만이지만 지금과 같이 사망 사건의 경우 그것도 본인의 자녀인 경우 누구에게도 용서를 구할 방법이 없다. 이때 중요한 것이 피고인의 진지한 반성의 태도인데, 필자는 아이 엄마의 쉴 새 없는 눈물을 보며 깊은 곳부터 밀려오는 진실한 참회를 보았다.

피고인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좁은 접견실에서의 짧은 순간은 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라도 변호인의 조력이 필요한 충분한 명분이 되었던 것 같다. 여전히 고통 속을 살고 있을 아이의 엄마를 위해 짧은 기도의 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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