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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5-08-20본문
"후배님, 주민등록번호 좀 알려주세요. 전자소송에 사용자 등록해 드려야 해서요."
"010*** – 4******입니다!"
순간 전화번호를 잘못 적은 것이 아닌가, 잠시 멈칫했다. 법학전문대학원 2학년에 재학 중인 후배가 필자 사무실서 2주 간의 하계 실무수습 기간을 보내고 있는데, 전자소송 사용자 등록을 위해 물은 주민등록번호가 010으로 시작하니 당황스러웠다. 아, 01년에 태어나신 분이 벌써 사회에 나올 준비를 하는구나 하며 나의 나이를 돌아보게 되었다.
변호사시험 합격 후 6개월 간 진행되는 실무수습과는 차이가 있는데, 방학 중 40시간 이상의 실무수습 시간은 대부분 대학원에서 졸업요건인 것으로 안다. 필자 역시 14년 검찰에서의 실무수습을 지냈는데 돌이켜보면 처음으로 법정도 출정하고 '법조인'의 삶을 가까운 옆에서 경험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오늘은 뜨거운 여름, 서류 속 파묻혀 고통받고 있는 후배님에게 남길 '법조인의 삶'에 관해 돌아보려 한다. 짧은 기간이지만 많은 기억이 떠오르는 필자의 변호사로서의 삶에 있어 화두는 '투신(投身 혹은 鬪神)'이다.
자신의 몸을 던져 무언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뜻과 싸움에서 압도적으로 이겨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장 최근 겪은 사례를 소개하자면 '의학' 관련 사건이었다.
A씨는 2000년 유리공장에서 일하던 중 유리 파편이 뇌에 들어가는 사고로 뇌출혈이 발생하여 장해등급을 받고 산재 처리되었다. 당시부터 20여 년을 와상 상태, 즉 누워 지내야 하는 상태로 견뎌왔는데 지난 2020년 결국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셨다.
당시 유족들은 2000년 망인에게 발생한 뇌출혈로 인해 돌아가신 것이니 유족급여 지급 신청을 근로복지공단에 하였고 공단 측에서는 20년 전 뇌출혈과 망인에게 발생한 사망 원인인 심근경색 즉, 심장마비와는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처분을 하였다.
망자의 가족들은 필자의 사망으로 인해 유족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 다시금 상담 오셨고 사망 관련 의료기록을 검토하던 필자는 사인 중 '흡인성 폐렴' 즉 음식물이 폐로 넘어가서 발생하는 폐렴 발생이 있었음을 발견했다.
이에 즉시 망인의 사망 원인이 비록 심근경색이라 할지라도 사인 중 흡인폐렴이 있다는 것은 뇌출혈로 인한 후유증이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거부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하였다.
문제는 망자가 특별한 흡인 관련 문제없이 요양생활을 하였다는 것이었는데 재판부조차도 뇌출혈과 사망 사이에 기간이 너무 길다는 이유로 결정을 쉽게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2020년 시작한 재판은 지난 2025년 초 항소심에까지 5년여 동안 진행되었다.
지난 20년간 의료기록지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망자가 복용한 약물을 검색하고, 부작용 관련 제약회사 사이트와 뇌병변 학회를 매일 같이 접속했다. 유사 해외 논문들을 찾아보기도 전문의와 교수들을 만나보기도 심지어 당시 주치의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세한 상황을 확인하기도 했다.
재판 기록만도 7000페이지가 넘었으나 그 기록에 드러나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은 긴 싸움이었다. 결국 "이와 같은 이유로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여야 한다"라는 결정 이유로 원고의 승소가 확정되었다.
변호사 셋이 속된 말로 '미친 듯이' 싸운 시간이었고 먼 훗날 술 한잔하며 당시의 열정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을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는 누구의 명을 받거나 어떠한 평가를 앞두고 혹은 매일 같은 감시를 받으며 위와 같이 일한 것이 아니었다. 업무시간은 물론, 퇴근 후, 휴일에도 답 없는 사건을 떠올리며 고민과 노력을 계속하였을 뿐이었다.
필자가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자주 하는 말이 투신인데, 우리 몸을 던져 한 가지에 뛰어든다는 의미이다. 그 과정은 기록되지 않을 것이고 그 노력이 수치화되지 못할 것이며 심지어 그 결과가 우리가 기대한 것이 아닐지라도, 적어도 우리는 '후회 없이 싸워냈다'라는 우리만의 기억이 그리고 그 습관이 쌓일 것이기 때문이다.
2주간 겪는 수습이 기억에 오래 남기는 어렵겠지만, 후배님에게 변호사는 결국 '투신하는 삶'을 살아내야 함을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