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좌충우돌 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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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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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가단22631 사건 변호인 출석하셨나요.”
“오○○ 변호사 출석했습니다.”

지난봄 시작한 오 시보님의 6개월간 수습이 끝났다. 이제 “오 변호사”라는 이름으로 법정에 설 수 있게 되었고 금일 첫 단독 출정을 했다. 방청석에 앉아 지난 반년 동안 그이에게 어떠한 사수였나 돌이켜보다 문득 필자의 초임 변호사 시절이 떠올랐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참으로 흑역사가 많은 신입 변호사였다. 어린 나이 첫 직장이었던 필자의 수습 사무실은 유독 사건이 많았는데 한 변호사가 백여 개에 가까운 사건을 처리해야 했다. 다양한 분야와 쟁점의 사건들을 마주할 수 있음에 감사한 점이 많았으나 이제 막 배움을 시작한 변호사에게 버거운 시간이었다.

그해 가을, 대구가정법원 이혼 사건 변론기일을 들어가게 되었는데 당시 아무리 법정을 휘젓고 돌아다녀도 해당 사건 번호가 적힌 법정이 없는 것이었다. 결국 재판 10분 전까지 법원 전 층을 땀나게 뛰어다녔지만 찾을 수 없어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당시 다급한 전화를 받은 사무원분 왈, “변호사님, 설마 대구지방법원에 계신 건 아니죠?”.

지방법원과 가정법원이 같이 있다고만 생각했지 따로 있다는 생각을 못 하고 '대구법원'을 내비게이션에 찍고 온 실수를 한 것이다. 급히 전화를 끊고 20km 떨어진 곳에 10분 안에 갈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는 사수에게 전화해 해결했던 기억이 난다.


그 해 겨울, 처음으로 교도소 접견을 가는 날이었고 필자는 태어나 처음으로 교정기관을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사무실 재판이 너무 많아 사수 변호사님은 같이 동행하기가 어려웠고, 피고인을 만나 사실관계만 정리해 오면 되니 걱정 말고 다녀오라 하셨다.

홀로 접견실에 신청을 하고 피고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교도관께서 커피 한 잔을 가져오시더니 물으셨다. “가족이신가요? 아니면 친구? 면회 오시는데 정장 입고 오시는 분을 처음 봐서…” “아, 저는 피고인 변호사인데요…?” 그 순간 교도관은 한참을 웃으며 내 손을 잡고는 변호인 접견실로 데리고 가주셨다.

그리고 다시 봄, 법정 앞에 앉아 재판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할머니께서 “변호사님이세요?” 물으셨고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한 순진한 필자는 “예 뭐 도와드릴까요?” 친절히 답변했다. 대금을 갚지 않아 소송을 당했는데 도저히 여력이 없어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하고 있다며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 그러는데 혹시 방법이 없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소장을 보여달라고 하니 가져오지를 못했다며 작은 식당에서 주문한 5년 전 식자재 대금이라고만 하셨다. 그 얼마나 된다고 할머님께 이런 소송을 걸었나 싶어 5년 전이면 3년 단기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항변하시면 된다고 말씀드렸고 할머님은 연신 고맙다며 이상하게 나와 같이 법정을 들어갔다.

알고 보니 원고인 우리 의뢰인 유통 업체 회사의 상대방 식당 주인이었고 해당 식당은 식자재를 납품받고 수년간 안 갚거나 사업자를 바꾸는 방식으로 대금을 편취하고 있었던 악명 높은 맛집이었다. 야속한 할머님은 피고석에 앉아 “소멸시효가 다 되었다"라고 구두 변론을 하시는데 순간 하늘이 노래졌다. 돌아와 사수에게 보고하니 사수는 한참을 웃으시며 “박 변, 경험이야. 사람 좋은 게 죄는 아니니까 괜찮아!” 하셨다.

좌충우돌 시트콤 같은 필자의 신입 변호사 시절 기억을 적다 보니 유독 꺼벙했던 필자의 흑역사는 시리즈물로 제작을 해도 몇 권은 나오겠구나 싶다. 회고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기억이라기보다는 “나도 그랬었지” 하며 웃어넘길 수 있는 추억들이 대부분이라 다행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내게 좋은 감정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당시 이 모든 ‘사태’들을 해결해 주고 보듬어준 사수 변호사님, 사무장님, 법원, 검찰 그리고 각 기관 담당자분들의 따뜻함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 이 순간도 어디에선가 신입사원으로, 첫 알바 경험으로, 첫 부임지로 새로운 시작을 마주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지금 그 시간을 미리 겪은 우리는 그 ‘사태’들을 따뜻한 기억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인 자들에게 축복을, 그 처음인 자들보다 먼저 그 시간을 걸어온 이들에게 아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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